제2차 사토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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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사토 내각은 1967년 1월 29일 제3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승리한 후, 사토 에이사쿠가 총리로 재선임되면서 출범했다. 각료 전원이 유임되어 제1차 사토 내각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정국 안정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주요 각료 명단이 있으며, 경제, 외교 및 안보, 기타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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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사토 내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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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정보 | |
내각 이름 | 제2차 사토 내각 |
일본어 | 제2차 사토 내각 |
내각 번호 | 62대 |
국가 | 일본 |
총리 | 사토 에이사쿠 |
전임 내각 | 제1차 사토 내각 |
후임 내각 | 제3차 사토 내각 |
성립 연도 | 1967년 |
성립 날짜 | 2월 17일 |
종료 연도 | 1970년 |
종료 날짜 | 1월 14일 |
여당 | 자유민주당 |
선거 | 1967년 총선 1968년 참의원 선거 |
내각 형태 | 알 수 없음 |
예산 | 알 수 없음 |
법률 용어 | 알 수 없음 |
의회 회기 | 제55회-62회 국회 |
야당 | 일본 사회당 공명당 민주사회당 일본 공산당 |
국가 원수 | 쇼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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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현황 | 중의원: 다수당 참의원: 다수당 |
총 구성원 수 | 알 수 없음 |
이전 구성원 수 | 알 수 없음 |
정부 수반 직함 | 총리 |
부총리 | 알 수 없음 |
정부 수반 | 사토 에이사쿠 |
정부 수반 역사 | 알 수 없음 |
조언과 동의 | 알 수 없음 |
야당 대표 | 알 수 없음 |
야당 내각 | 알 수 없음 |
2. 성립 배경
제1차 사토 제3차 개조내각이 발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67년 1월 29일에 제3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은 공천 후보 중 낙선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사토 에이사쿠는 총리로 재선되었으며, 새로운 인선은 거의 없이 내각 각료 전원이 유임되었다. 총리가 재선되고 모든 각료가 유임된 것은 1963년에 성립된 제3차 이케다 내각 이후 전후 두 번째 사례였다.
긴키권 정비 장관
3. 주요 각료
주부권 개발 정비 장관
수도권 정비위원회 위원장니시무라 에이이치 자유민주당 사토파 1967년 2월 17일 1967년 11월 25일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후지에다 센스케 자유민주당 가와시마파 1967년 2월 17일 1967년 11월 25일 행정관리청 장관 마쓰다이라 이사오 자유민주당 (참의원 의원) 1967년 2월 17일 1967년 11월 25일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과학기술청 장관니카이도 스스무 자유민주당 사토파 1967년 2월 17일 1967년 11월 25일 방위청 장관 마스다 가네시치 자유민주당 사토파 1967년 2월 17일 1968년 11월 30일 경제기획청 장관 미야자와 기이치 자유민주당 마에오파 1967년 2월 17일 1968년 11월 30일 내각관방장관 후쿠나가 겐지 자유민주당 마에오파 1967년 2월 17일 1967년 6월 21일 기무라 도시오 자유민주당 사토파 1967년 6월 22일 1968년 11월 30일 총리부 총무장관 쓰카하라 도시오 자유민주당 사토파 1967년 2월 17일 1967년 11월 25일 내각법제국 장관 다카쓰지 마사미 무소속 1967년 2월 17일 1970년 1월 14일 내각관방부장관 (정무) 기무라 도시오 자유민주당 사토파 1967년 2월 17일 1967년 6월 21일 가메오카 다카오 자유민주당 사토파 1967년 6월 22일 1968년 11월 30일 내각관방부장관 (사무) 이시오카 미노루 무소속 1967년 2월 17일 1970년 1월 14일 총리부 총무부장관 (정무) 우에무라 센이치로 자유민주당 나카소네파 1967년 2월 17일 1967년 11월 28일 총리부 총무부장관 (사무) 호리 히데오 무소속 1967년 2월 17일 1968년 2월 2일 [1]